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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와 요나라의 1차 전쟁(김수현 & 이선화)

 

 

 

 

 

 

 

고려와 요나라의 1차 전쟁

 

 

 

 

 

 

 

 

Ernst Schule Internationale

 

 

 

 

김수현, 이선화

 

 

2015. 9. 7.

 

 

목 차

 

 

서론

연구 목적 ................................................................................................................................... 1

연구 방법과 범위 ...................................................................................................................... 1

고려와 요나라의 1차 전쟁

원인 ............................................................................................................................................. 1

전쟁 과정 ................................................................................................................................... 2

1차 회담 .............................................................................................................................. 2

2차 회담 .............................................................................................................................. 3

3차 회담 .............................................................................................................................. 3

결론

서론

연구 목적

고려-요나라(거란) 간의 전쟁은 993(성종 12)부터 1019(현종 10)까지 총 3회에 걸쳐 요나라의 침입으로 인해 일어난 전쟁이다. essay에서 다루는 전쟁은 고려-요나라의 제 1차 전쟁으로, 요나라의 장군 소손녕과 고려의 문신이자 외교관인 서희가 활약한 전쟁이다. essay에서는 소손녕과 서희의 외교 담판에 대하여 그 원인과 과정, 결과를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연구 방법과 범위

II장 고려와 요나라의 1차 전쟁에서는 이 두 나라가 전쟁을 벌이게 된 원인을 자세히 서술하며, 그를 바탕으로 두 나라가 벌였던 제 1, 2, 3차 회담에 대해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인터넷 백과사전과 뉴스 기사에 서술된 정보를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고려와 요나라의 1차 전쟁

원인

922, 요나라(거란)는 고려에 친교를 요청하며 최초로 사신을 보냈다. 그 뒤로도 요나라는 몇 번이나 사신을 보내 친교를 요청했지만, 고려 태조 왕건은 942년에 요나라와의 단교를 선언한다. 그 뿐만 아니라 요나라가 고려에 친교를 요청하며 선물로 보낸 사신 30명을 유배 보내고, 낙타 50필을 개경의 만부교(萬夫橋) 아래에 묶어두고 굶겨서 죽여버린다. 이를 만부교 사건이라고 부른다. 만부교는 ‘1만 명의 사람들이 놓은 다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으나, 이 사건 이후로 낙타 다리라는 뜻의 탁타교(橐駝橋)라는 명칭으로 이름을 바꾼다. 태조 왕건은 요나라가 발해를 멸망시켰다는 이유로 그들을 짐승의 나라라고 칭하며 굉장히 멸시했다. 훈요 10조 중 제 4조에 거란의 풍속을 본받지 말라는 말을 남길 정도였다. 이러한 태조 왕건의 말에 따라 후세의 왕들은 요나라를 배척하고 적대적인 태도로 북진정책을 펼쳤으며, 고려와 요나라의 관계는 약 50년 간 단절되었다.

고려는 960년 개국한 송나라(북송)와 발해 유민들이 세운 국가인 정안국(定安國)에 화친 정책을 펼쳤으며, 이들과 협력하여 요나라 공격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국제 사회에서 고립된 요나라는 986년에 정안국을 멸망시켰으며 고려에게는 송나라와 단교하고 자신과 화친할 것을 권한다. 하지만 결국 거란은 여전히 고립되어 991(성종 10), 압록강 하류의 위구(威寇), 진화(振化), 내원(來遠)에 진을 치고 고려를 침공할 준비를 하였다. 한반도와 대륙을 잇는 중요한 길목인 압록강 유역을 요나라가 차지해버리자 고려는 좋지 않은 상황이 되었고, 이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993년 겨울, 요나라 장군 소손녕과 그의 대군이 고려를 침공하였다. 이것이 제 1차 고려-요나라 전쟁의 시작이다.

 

전쟁 과정

1. 1차 회담

요나라의 장군 소손녕이 고려를 침입하자 이 소식을 접한 고려 정부는 군대를 파견하여, 현재의 평안북도 지방에서 요나라에 대한 방어를 준비 시켰다. 이때, 당시 고려의 왕이었던 성종은 직접 군사를 주둔하기 위하여 서경으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소손녕은 바로 고려를 공격하지 않고 공문을 보내었다. 하지만 이때 성종이 서경으로 이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북계에서 방어 준비를 하던 군사의 중군사인 서희가 소손녕의 공문을 직접 읽게 되었다. 소손녕이 보낸 공문의 내용은 우리나라는 천하를 통일하고 있다. 아직 우리에게 귀순치 않는 나라는 기어코 소탕할 것이니 속히 투항하라. 잠시라도 머뭇거리지 말라.” 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요나라는 여진 지역을 모두 차지하고 자신들의 땅을 되찾으려던 여진은 군사를 일으켰으나 요나라에 대패하였었고, 이를 고려도 잘 알고 있었다. 이에 따라 소손녕의 공문을 읽은 서희는 요나라 군사에게 온 힘을 닿 맞서 싸워도 쉽게 우승을 차지 하지 못 할 것이라 판단하였다. 그리고 서희는 일단 요나라와 화의를 하자고 성종에게 제안하였다. 이를 들은 성종은 고려의 문신이었던 이몽전을 소손녕에게 보내어 화의를 청하였다. 이것이 제 1차 회담이다. 이몽전이 소손녕에게 화의를 제안했음에도 불구하고 소손녕은 화의를 맺으려 하지 말라고 하였고, 계속해서 고려의 항복을 강요하였다. 이렇게 제 1차회담은 화의를 맺지 못하고 성과 없는 회담으로 남았다.

 

2. 2차 회담

이몽전이 요나라와의 제 1차 회담에서 화의를 맺는데 실패하고 조정으로 돌아오자, 고려의 조정은 두 가지의 의견을 가진 파로 나누어 졌다. 요나라의 요구대로 요나라에게 그냥 항복을 하자는 의견을 가진 파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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