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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7일 고려와 거란과의 전쟁(Team B) 역사, 철학

10월 7일 대본


동현: 거란은 926년에 발해를 공격하여 멸망시킨 이후 만주 지역의 패권을 장악하게 됩니다. 이때 근접한 강대국인 고려에게 화친을 요청하며 사신과 낙타 50필을 보냈다. 하지만 고려는 당시 발해와 우호 관계를 맺고 교류를 계속하고 있었기 때문에 발해 멸망 이후 유민들을 받아들여 세력을 키웠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도 받아들일 수 없었고 사신들을 섬으로 강제 유배하고 개성의 만부교에서 굶겨 죽이면서 외교 관계를 단절하였다. 하지만 이때는 당장 전쟁으로 발발하지 못했다. 발해의 잔존 세력인 정안국이 남아 있었고 당시 거란이 북송과 싸우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강대국이던 고려와 발해를 의식 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태조 왕건이 사망한 이후 훈요 10조를 남겨 그중 4조와 5조를 지켜 거란 같은 이민족의 풍습을 멀리하고 서경을 중시하며 북송과의 교류를 더욱 단단히 했다. 이렇게 되면서 송나라, 정안국, 고려에게 외교적으로 고립되게 된 요나라는 정안국을 공격하여 멸망시키고 만주를 장악한 이후 고려에게 송나라와 의 외교 단절과 화친을 요청했다. 하지만 고려는 이를 무시하였고 이 결과 요나라 장군 소손녕이 군대를 끌고 내려오게 되는데 소손녕은 봉산 전투에서 승리한 이후 80만 대군을 이끌고 왔다며 소문을 내었고 이를 기반으로 항복을 강요했다. 그러자 고려 조정은 항복파와 항복을 전제로 땅까지 할양해야 한다는 할지파가 싸우게 되었다. 할지파는 서경을 포함한 북부 지방을 넘기자 주장하였다. 하지만 서희는 소손녕이 고려군의 주력 부대가 주둔하는 곳을 피하여 가는 것을 알고는 의도를 파악하고 이를 반대했다. 이때 고려군이 거란군을 격퇴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고려 정부는 회담파로 돌아서게 됩니다. 소손녕은 다시 회담을 요청하게 되고 고려 정부는 이를 수락하게 됩니다. 이에 소손녕을 만나러 서희가 단신으로 거란 진영에 가서 회담을 벌이게 되고 이에 결론적으로 거란에게 강동 6주를 빼앗아도 된다는 허가를 받았고 무력으로 여진을 무찔르면서 강동 6주를 획득하여 안정화시키고 요새화 시키면서 거란이 두 번다시 이긴적이 없는 요새를 만들게 됩니다.

태원: 자 나는 강조의 난(rebellion)에 대해서 explain 해줄게 강조가 누구냐 쉽게 말하면 서경 지금의 평양에 있었던 고려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에 수장 이었다고 생각하면되.

그때 당시 왕은 목종 이었지 성종(成宗)의 아들이자 천추태후의 남편 목종이 늙어서 병상에 눕게 되었는데 후자가 없었어. 그래서 정치욕이 강했던 천추태후가 자신과 김치양(金致陽) 사이에서 나은 아들을 왕으로 올리고 싶어했지. 여기서 김치양은 외가의 친척이었어. 이 사실을 안 목종은 미리 피난을 갔지. 그래서 이때다 싶은 김치양이 왕위가 빈 틈을 타 자신의 아들을 왕위에 앉히려고 했고 목종이 사해 했다고 발표를 했어. 이 일이 있기 전 목종은 자신을 지켜달라며 서경에 있던 강조를 불러 개경으로 오게했지. 그래서 개경으로 가던 중 강조는 김치양 일파가 이미 목종을 시해하고, 북방의 군사권을 쥐고 있는 강조를 개경으로 불러들여 제거하기 위해 왕명을 사칭했다’라는 소문을 듣게 되. 이를 들은 강조는 서경으로 다시 발길을 돌려 그런데 아버지에게서 한편에 편지를 받게 되왕이 죽고 없으니 병사를 거느리고 와서 국난을 평정하라.”라는 내용이었지. 이에 놀란 강조는 5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다시 개경으로 향해 개경에 도착한 강조는 김치양과 그의 아들을 죽이고 천추태후를 유배보내. 그 후 목종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 이렇게 되면 개인이 자신의 군사를 끌고 있어야 할 지역을 벗어 났다는 사실은 반역이나 다름이 없게 되겠지. 그래서 어쩔수 없이 목종을 죽이고 현종을 왕위에 앉혀 이 일이 바로 거란의 2차 침입의 명분이 된 강조의 난이야.

선화: 강조의 정변으로 인하여 고려가 혼란스러운 틈을 타 거란의 성종은 고려를 침입하기로 결정한다. 이때가 1010년에 일어난 거란의 고려 2차 침입이다. 거란은 강동 6주 중 하나인 흥화진에서 양규가 이끄는 고려부대와 싸운다. 이것이 2차 여요전쟁의 첫 번째 전투이다. 양규는 뛰어난 수성능력으로 거란을 방어해낸다. 강동 6주의 성들에는 충분한 식량과 무기가 있어 방어하는 데에 뛰어났다. 거란족들은 유목민족이였기 때문에 오랫동안 전투를 할 수 없었다. 따라서 거란은 흥화진을 함락시키는 것을 포기하고 남쪽으로 개경을 향하여 내려간다.은 나주로 도망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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