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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동성, 안정성, 그리고 교육개혁 상호간의 관계 학교 및 사회교육개혁

2023. 5. 22(월) 동양일보 풍향계 논설문

풍향계/ 역동성, 안정성, 그리고 교육개혁 상호간의 관계

한희송(에른스트 국제학교 교장)


어떤 객체에 대해 정의를 부여함에 있어 그 정의가 옳을수록 그에 사용된 언어는 포괄적 의미를 가질 확률이 높다. 단 한 가지 측면을 드러내어 전체를 설명하는 일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정의하고자 하는 전체가 충분히 작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인식의 대상을 쉽게 설명하는 용어일수록 정확성을 가진 표현이 되기 어렵다. 결국 오컴의 윌리엄(William of Occam)이 면도칼의 날을 날카롭게 할수록 ‘보편성( universals)’의 존재가능성은 실재론(realism)으로부터 멀어져 ‘명목론(Nominalism)’의 구체적 허무함에 접근하게 되어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사회적 동물’로 정의했다. 사회적 동물의 예로 ‘벌’, ‘개미’, ‘고릴라’ 등이 자주 등장한다. 이들이 ‘사회’를 이루고 그것에 복종하는 것을 바탕으로 개인적 존재의 모습이 긍정적으로 구현된다는 사실 전제될 때 이 말은 의미가 부여될 것이다. 이것은 개인이라는 구체적 존재에 생각의 유연함이 부여됨을 의미하고, 사회가 긍정성을 가지고 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사상이 더해져야 적절한 의미로 수렴된다는 뜻이다.


민주주의는 전체사회 변화의 가능성에 집중된 제도이고, 자유주의는 사회가 설정한 범위와 사회요소인 개개인의 생각과 활동의 범위가 일치하지 않을 때 어디까지 사회가 ‘인용(認容)할 수 있는가’에 관한 이야기다. 전체사회의 변화가능성은 개개인의 그것보다 무겁다. 그래서 사회는 고인물이 되기 쉽다. 고인 물은 흐르지 않는 한 썩을 운명을 이미 몸에 간직하고 있다. 그런데 고인 물의 부피가 크면 이미 안정된 체제로 수렴되어 변화를 꾀할 자유는 뿌리를 잃었을 확률이 크다. 기초가 안정적일수록 변화라는 개념은 그 기초 자체를 바꾸는 본질적인 운동이 되므로 그 시스템에서 안정을 구가하는 사람들에게 변화는 사회발전의 기회로 인식되기 힘든 면이 있다.


후스(Jan Hus)나 위클리프(John Wycliffe) 등의 선각자들은 이미 썩어버린 ‘사회’에 생명을 주고자 했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은 ‘인격’을 썩게 만드는 악마들과 한통속으로 해석되어 진실로 썩은 집단으로부터 인간으로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도리어 받았다. 그 고통들이 모여 카톨릭 내에서의 정화운동이 아니라 구교를 버리고 ‘신교도’라는 새로운 종파를 형성하는 동력으로 크고야 말았다. 루터(Luther), 츠빙리(Zwingli), 그리고 칼뱅(Calvin)등의 르네상스적 생각을 뭉친 슈말칼덴(Schmalkaldic) 동맹이 군대를 조직하자 ‘신교도혁명’이라는 표현은 전 세계에서 공히 사용할 수 있는 보통명사가 되었다.


현재의 교육제도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로 구성되어야 학교이며, 이들에서의 학습기간은 각각 6년, 3년, 3년, 4년이어야 한다. 각각의 학년은 기본적으로 나이가 같은 청소년들로 구성되어야 하고, 학습은 영어, 국어, 수학, 과학, 사회, 등의 과목으로 구분되어 있어야 하며 이 또한 나이에 따라 다른 학습과정으로 구성되어 있어야 한다. 이 생각을 현재의 한국사람들이 바꿀 수는 없다. 따라서 아이들은 시험점수로만 판단하고, 또한 판단되어야 한다. 실제로 아이가 지식을 가지고 있는가를 논하는 일은 반사회적 사고가 된지 오래이다. 이를 바꾸려는 사람은 올바른 교육의 본질을 탐구하는 자가 아니라, 얀 후스처럼 프라하의 구시가 광장에서 고통속에 죽음에 이르도록 조롱을 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확실한 인식이 국민의 생각을 지배한다.


보헤미아의 신교도들은 찰스5세의 공무원들과 협상을 통해 자신들이 얀 후스의 후예임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며칠도 지나지 않아 바로크시대에도 여전히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했다. 1618년 5월 23일 프라하 성벽에 딸린 방에서 신교도들은 찰스의 일꾼들을 창밖으로 던지고야 말았다. ‘30년 전쟁’이란 혁명이 시작된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현재의 교육과 교육제도는 이미 오랫동안 고여 있는 탁한 물이다. 학년, 학과목, 교실구성, 수업방법, 모든 것을 하나도 바꿀 생각도 의지도 없이 하루를 견디면서 아이들은 어른이 되고 이유도 없이 썩은 물을 퍼내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을 벗어날 수없는 수형자로 전락한다. 1618년의 오늘도 그런 세상에 경종을 준 날이다. 우리는 국민, 학생, 회사원, 등등의 형식적 지위를 갖기 이전부터 본래적으로 ‘존재’하는 ‘존재’로서의 ‘순수한 가치’를 가진 ‘존재’들이다. 지금의 어른들이 이를 스스로 깨달을 가능성이 있기는 할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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