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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편지

 

유럽사 강의 - 6 교회의 대분열 ii


자, 오늘은 the Great Schism에 대해서 알아 보자. 며칠 전에 ‘미남(the Fair)’라고 별명이 붙은 프랑스의 Philip IV에 대해서는 잠깐 나왔었지? 다리가 길어서 ‘롱다리(Longshanks)라는 별명이 붙은 영국와 Edward I 도 이미 등장했었지? 이 둘이 죽어라고 서로 싸웠는데, 결판이 잘 나지 않는 것이야. 그러니까 전쟁이 길어지고, 전쟁이 길어지면 이를 수행하는 돈이 금방 동떨어지게 되지…그래서 Philip the Fair과 Edward가 생각해 낸 것이 바로 ‘교회에 대한 과세’ 였어. 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이야기 했었지? 어쨌든 Philip the Fair와 당시 Pope이었던 Boniface VIII가 이로 인해 충돌하게 되었지. 그 경과가 바로 Clericos Laicos - Unam Sanctam - 아나니 사건(the Crime of Anagni) 라는 것 기억하니? Anagni는 Pope Boniface VIII의 고향인데, 거기까지 Pope를 좆아간 King Philip IV의 군대는 Pope를 때리는 둥 마구 대한 끝에 3일만에 풀어 주었지. 이 세상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던 Boniface는 이 일에 충격을 받아서 그만 죽고 말아요. 그 다음에 Pope가 되는 Benedict XI(eleventh)는 조심 했지만 그만 교황이 된 다음 해 죽어.

이 당시 Pope선거권(the Papal Conclave)를 가진 the Roman Catholic Church의 Cardinals들에는 물론 Italy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와 비슷하게 France출신들도 매우 많았어. 그래서 1305년 교황선거(the Papal Conclave)에서 France 출신 클레멘트 5세(Clement V)가 당선될 수 있었지.

카페왕조(Capetan Dinasty) 11대 king이었던 Philip IV는 이 당시 돈과 권력이 되는 것이라면 눈을 부릅뜨고 가지려고 하지. 바로 이 욕심의 희생이 된 것이 바로 성전기사단(the Knights Templar)이었어.

먼저 당시의 상황과 기사단(Order of Knighthood)에 관해 잠시 이야기를 해 보자. 어제 Pentarchy 중에서 Jerusalem, Alexandria, Antioch가 7세기 전후에 이슬람 세력(Muslim rule)에 점령당했다는 사실(이것을 Muslim Conquest라고 하지)을 배웠지? 이 일로 인해 Islam과  Christianity는 서로 마주치게 되었겠지? 이때 이들과 마주치게 된 곳이 바로 the Eastern Rome인 The Byzantine Empire 야. Muslims들의 등살에 서서히 힘을 잃어가던 the Eastern Rome의 상황이 the 11th century에 매우 급박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Islam 민족 중에서 아주 강했던 투르크 족(the Turks - 지금 Turkey의 이름이 여기에서 왔단다.), 그 중에서도 아주 대단했던 셀주크 왕조(The Seljuk Empire)가 쳐들어 오기 때문이었지. 결국 1453년 이들의 뒤를 이은 오스만(영어로는 Ottoman임에 주의) 왕조에게 나라를 빼앗겨서 the Eastern Roman Empire는 지금 Turkey가 되어 있지. 그러니 11세기 당시에 the Eastern Emperors들은 얼마나 속이 탔겠니? 

Emperor는 여기 저기 도움을 요청하는데 그 첫번째가 같은 Christianity를 종교로 하는 the Western Europe이었어. 기록에 보면 1081년에는 당시 중국(China)의 송나라(Song Dynasty)에까지 도움을 요청했대. 어쨌든 the Eastern Orthodox Church와 the Roman Catholic Church는 서로 사이가 안 좋았지만 당시 Pope 우르비노 2세(Urban II)는 the Eastern Roman Emperor인 알렉시오스 1세(Alexios I)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그래서 Europe의 kings들에게 군대를 일으킬 것을 권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1차 십자군(the First Crusade)이야.

The First Crusade가 Holy Land인 Jerusalem을 되찾게 되는 것이 바로 1099년이야.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하나 생각해야 할 점이 생긴단다. Europe의 나라 중 어느 한 나라가 Jerusalem을 차지 했다면 the Holy Land는 그 나라의 땅이 되었겠지? 그러나 그 땅을 되찾기 위해 결성한 군대는 the Crusade라는 이름이 붙은 Europe의 여러 나라에서 온 군인들의 집합일 뿐이었어. 그래서 the Holy Land를 회복(reconquest)하지만 전쟁이 끝난 다음 모두 자기의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그냥 회복하기만 해 놓고 이걸 지킬 군대는 없는 것이었어. Reconquest만 해 놓고 군인들이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버리니까 그 땅은 다시 Islam의 차지가 되지. 그래서 십자군 운동은 한 번 있는 것이 아니고 여러 번 있게 되는 것이야. 참 이상하지?
또, the Crusade전쟁으로 the Holy Land가 reconquest되었다는 소문이 나자, Europe 각지에서 사람들이 성지순례(pilgrimage)를 하는 사람들도 생기기 시작했어. 그런데 어려운 시절에 먼 길을 걷다 보니까 중간에 도적 떼를 만나기도 하고 다치기도 하게 되었어.

이러다 보니 “야! 우리 자꾸 이럴게 아니고 집에 돌아가지 말고 여기에 남아서 Jerusalem을 지키자! 내 말에 동의하는 사람 모여봐!”라는 의견을 가진 사람이 생겼어. 그리고“야! pilgrimage가는 사람들이 도적떼들에게 빼앗기고 죽임을 당하고 그런대! 이들을 보호해야 하니까, 그럴 생각이 있는 사람들 모여봐! 라고 외치는 사람도 생겼어.” 바로 이들이 만든 단체가 the Order of Knighthood야. 이런 단체가 여러 개 생겼는데, 그 중 가장 크고 유명한 단체를 몇 개 이름만 들어보고 지나갈까?

가장 처음 the First Crusade때인 1099년에 생긴 것이 바로 순례자(pilgrims)들의 병을 고쳐주어서 ‘병원기사단(Knights Hospitaller)’으로 유명해진 ‘성요한기사단(Order of St. John)’이야. 이들은 다친 십자군 병사나 pilgrims들을 치료새 주는 것으로 유명했단다.
그 다음으로는 ‘성당기사단(Knights Templar)’가 있지. 이들은 reconquested된 Jerusalem으로 오는 pilgrims들의 사람들의 안전을 지켜 주어서 유명해졌지.
그리고 주로 독일사람들로 구성되어서 ‘독일기사단(German Knights)로 불리는 튜턴기사단(Teutonic Knights)가 있느데 이들은 예루살렘 성을 지키는 일로 유명해 졌어. 어쨌든 이외의 수 많은 기사단들이 있었는데 이들의 공통된 목표는 일단 the Holy Land를 지키는 것이었어. 이들 기사단은 지금까지도 소설, 영화 등의 이야기 거리가 된단다. 이 중에서도 가장 신비롭고도 많은 이야기거리의 소재가 되는 것이 바로 the Knights Templar야 그건 바로 Philip the Fair 때문이지.

어쨌든 The Order of Knighthood(The Order of Chivalry라고도 함) 들은 바로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the Holy Land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이었으므로 가장 먼저 the Crusade를 주창한 Pope의 마음에 들게 되지. 그래서 Pope와 Europe의 많은 왕, 단체 그리고 돈 많은 개인들로부터 감사의 표시와 함께 어마어마한 기부를 받게 된단다.

얼마 전, 유럽의 기본구조를 이해하는데 ‘땅’을 권력의 중심개념으로 놓는 것을 배웠지? 권력이 있으려면 땅이 있어야 하는 것이 중세의 the feudal system 였잖아 그치? 그래서 교황령도 생기고, 그래서 공작이든 백작이든 자기의 땅을 가져야만 그런 칭호가 붙는 거였잖아 그치? 땅이 없는데 ‘공작’이란 칭호를 붙일 수는 없는 거야. 그래서 왕이 자식을 낳으면 그 자식에게 작위(title)를 수여할 때에 그냥 ‘duke’만 수여할 수 없는거야. 바로 the duke of Normandy(노르만디 공작) 처럼 이름을 붙여 주는데 이때 뒤에 붙은 Normandy는 바로 ‘땅’이야.
그래서 이름조차도 Lenardo da Vinci(빈치라는 땅에서 온 레오나르도라는 녀석)이라고 부르게 되는거지. 즉 땅이 없는 사람은 세금이 나올 곳이 없으니까 먹고 사는 것이 보장이 되질 않아요. 그래서 귀족은 땅 즉 manor가 있어야만 하는 거야. 이 땅을 선물하는 것이 유럽에서는 자자손손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근거를 주는 것이니까 가장 큰 선물이 되는 것이란다. 당연히 이 Order of Knighthood들도 누군가로 부터 땅을 받게 되었겠지? 그래서 이들은 돈과 권력을 갖게 되었어.

어쨋든 이렇게 하다 보니까, 어느새 the Orders of Chivalry들은 어마어마한 돈과 땅과 이로 인한 권력을 가지게 되었지. The Teutonic Knights들은 주로 독일 사람들로 구성된 데 반하여 the Knights Templar는 프랑스 사람이 많았지. 거기다가 Philip IV는 영국과의 전쟁을 위해 the Knights Templar에게 막대한 빚을 지고 있었어. 바로 이러한 사정이 the Knights Templar에 대해 Philip IV로 하여금 침을 흘리게 만든 거야. 그는 the Knights Templar들을 이단이라고 고발하게 한 뒤 종교재판(Inquisition)에 넘겼지. 머리가 여러 개인 짐승을 섬겼고, 어린 남자아이들과 성행위를 즐겼으며, 사람을 잡아먹기도 했다는 둥, 누가 들어도 말이 안 되는 죄목을 뒤집어 씌웠지. 그리고는 자백을 받는다고 이들을 잡아다가 팔을 뒤로 묶어서 줄에 건 다음 몸을 아래로 떨어트려서 팔이 체중 때문에 뒤로 돌면서 어깨뼈가 부러진 다음 팔이 묶여서 공중에 매달리게 하는 고문으로 시작해서, 손톱을 뽑는 정도는 별 것이 아닌 고문들을 했지.

Philip은 이 일을 Pope  Clement V가 취임하던 바로 그 날 부터 Clement에게 the Knights Templars들에 대해 이단이라는 누멷을 뒤집어 씌우기 위해 노력했단다. 이런 노력은 Clement로 하여금 겁에 질리도록 만들었어. 결국 Clement V는 Philip the Fair의 요구대로 1312년 the Knights Templar의 이단성을 확인하고 해체를 명하게 되지. Philip IV는 얼씨구나 좋아하면서 이 knights들을 불에 태워 죽이는 만행을 저지른단다. 그래서 the Knights Templar들은 순식간에 역사에서 살아지는거야. 그래서 많은 이야기거리와 신비함을 더해주고 있지.

이런 미친 짓을 하늘이 벌 했는지 the Knights Templar의 단장(Grand Master)인 Jacques de Molay(영어로는 James of Molay)를 화형(burned at the stake)함으로서 the Knights Templar가 없어지던 바로 1314년 3월, 바로 그 다음 달에 교황 Clement V도 죽게되는데 시체가 누워있는 교회에 벼락이 쳐서 시체가 다 타버렸다는 이야기가 있지. Philip the Fair는 그로부터 7개월 정도 있다가 역시 1314년 11월에 죽게 된단다. 그리고 카페왕조도 Philip IV의 아들대에서 끊기게 되지.

그런데 이 당시의 교황령(the Holy See)는 지금의 바티칸(Vatican)이 아니고 산 지오반니 라테란 성당(Basilica di San Giovanni in Laterano) 이었지. 2009년에 아빠와 로마여행 갔을 때 가장 큰 Obelisk가 서 있던 교회 기억 나지? 참 하나 더! 지오반니<Giovanni>는 이탈리아 말이고 이것의 영어는 John이란다. 우리나라에서는 ‘요한’이라고 하지. 성경에서는 John이란 이름으로 나오는 매우 중요한 사람이 둘 있는데 바로 예수님의 제자 요한<John the Apostle>과 세례요한<John the Baptist>이란다. 이 교회는 이 두 분을 공동 수호성인<co-patrons of Cathedral>로 모시고 있어.

어쨌든 이 the Knights Templar들을 공식적으로 체포해서 자백을 받기 위한 고문을 하기 시작한 1307년 이 Basilica di San Giovanni in Laterano에서 큰 불이 난단다. 이 당시 Rome는 거의 무정부 상태 비슷해져서 질서라는 것이 잡히지 않고 있었지. 바로 이 이유가 겹쳐져서 Clement V는 Pope로서의 대관식(Coronation)도 로마에서 치루는 전통을 깨고 프랑스 리옹(Lyon)에서 치룬단다. 그리고는 아예 Rome으로 돌아가지 않고 프랑스의 아비뇽(Avignon)에 살아 버린단다. 이것이 바로 ‘아비뇽 유수(the Babylonian Captivity of Papacy)'라는 사건이란다.

이제는 완전히 Pope가 Philip V라는 king의 수중에서 살게 되니까 그 권세는 말 할 필요도 없이 왕의 아래에 있는 주교(Bishop)에 불과하게 되었겠지? 이것이 바로 교황권(Papacy)이 왕권(kingship)보다 떨어지게 되는 아주 중요한 계기가 된단다.

자 오늘은 너무 길게 공부했구나 그럼 이만 하고 내일 다시 하자…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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