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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활동

 

거란의 1차 침입(이동하, 이가현, 김동현, 조지형)

 

 

거란의 제 1차 침입

 

 

 

Ernst Schule Internationale

 

 

 

 

학 년 12학년, 11학년, 10학년

 

 

이 름 이동하, 이가현, 김동현, 조지형

 

 

2018. 9. 7

 

 

거란의 제 1차 침입

 

지도교사 Kevin

 

 

 

Essay를 역사시간 보고서로 제출함

 

 

 

201897

 

 

Ernst Schule Internationale

 

 

학년 12학년, 11학년, 10

 

 

 

 

 

 

 

목 차

 

. 서론

........................................................

1

1. 연구의 방법

...................................................................

1

2. 연구의 목적과 범위

...................................................................

 

 

 

 

. 본론

..................................................................

2

1. 거란의 침략 배경

...................................................................

2

2. 서희에 대해서

...................................................................

3

3. 강동 6

...................................................................

4

4. 이후 상황

...................................................................

6

 

 

 

. 결론

...................................................................

7

 

 

 

 

 

 

 

 

 

 

 

 

 

 

 

 

 

 

 

 

 

. 서론

 

1. 연구의 방법

 

Essay의 연구 방법은 책과 인터넷을 사용하였습니다. 책은 대부분 교과서의 사실을 기반으로 Essay를 작성하였고, 인터넷은 백과사전과 위키백과 등 여러 곳을 찾아보아 정보들을 비교해서 사실이라고 많이 알려져 있는 정보를 이용하여 작성하였습니다.

 

 

 

2. 연구의 목적과 범위

 

Essay에서는 거란의 1차 침입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서론과 결론을 제외하여 총 4장의 본론을 가지고 있습니다. 1장에서는 거란의 1차 침입의 초기 상황에 대해서 알아보았고, 다음 제2장에서는 1차 침입에서 가장 많은 업적을 남긴 서희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또한 제 2장과 3장의 주요 사건을 같이 다루었습니다. 3장에서는 거란의 1차 침입의 관해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강동6주 지역을 알아보았으며, 그 시기 일어나 회담을 같이 다루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 4장에서는 거란의 1차 침입이 끝나가는 시대 상황에 대해서 알아보면서 마무리 하였습니다.

 

 

 

 

 

. 본론

 

1. 거란의 침략 배경

 

한반도와 거란은 옛날부터 외교 관계를 지속해왔다. 그러나 이전에 거란이 발해를 멸망시킨 것을 본 태조 왕건은 거란을 믿을 수 없는 나라로 판단하여 고려의 건국 초기 942(태조(왕건) 25)에 거란의 사신 30여 명과 낙타를 보내며 친교를 요청했던 것을 무시하고 거란과의 관계를 끊음을 선언하였다. 또한 사신으로 고려에 온 30여 명을 섬에 유배 보내버리고 낙타를 굶겨 죽이는데 이를 만부교 사건이라고 한다. 고려가 발해를 형제국으로 인정하였다고는 하지만 엄연히 다른 나라이다. 다른 나라의 멸망에 이렇게 신경을 쓴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킨 것과 비슷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을 통일한 직후에 일본이 다시 분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다른 곳으로 내부의 시선을 돌릴 필요가 있었고 임진왜란을 일으켜 전쟁에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를 통해 일본은 하나로 뭉칠 수 있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태조 왕건 또한 이전까지 한반도는 하나가 되지 못했다. 통일신라가 있다고는 하지만 북쪽에는 발해가 존재했다. 고려 초기에도 마찬가지로 발해가 존재하였으나, 발해는 923년에 거란에 의해 멸망하면서 고려는 삼국시대를 계승하는 유일한 국가가 되었고 그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발해의 민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으며 겉으로는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을 배척 하지만 실상은 내부가 분열되는 것을 막기 위해 북쪽의 세력으로 눈을 돌려서 단합을 목적으로 한 행동임을 알 수 있다. 그 후 거란과 고려의 관계는 왕건이 죽으면서 남긴 훈요 10조를 보면 거란을 배척하고 송나라와 관계를 원만하게 하는 형식의 외교 형태가 유지된 것을 알 수 있다. 거란은 원래 유목민족으로 계속 이동하며 다니기에 농사를 짓지 않아 약탈을 주로 하는 민족이다. 하지만 거란은 무역을 하면서 약탈을 포기했는데, 거란이 고려를 침략할 즈음엔 거란과 외교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들이 없었다. 당장에 고려와 송나라는 거란을 협력하여 공격할 계획을 세웠고 발해 유민들이 세운 나라인 정안국은 자신들의 나라를 멸망시킨 거란을 배척하며 송나라와 외교 관계를 맺었으며 옆에는 여진이라는 불구대천의 원수가 이를 갈면서 지켜보고 있었다. 이렇게 외교적으로 완전히 고립된 거란은 정안국을 멸망시키고 고려로 내려오게 된다. 하지만 거란은 고려를 무턱대고 공격하지 않고 계속하여 타협을 요청하는데 그 이유는 일종의 무력항쟁으로 거란은 고려와의 타협에서도 계속하여 송나라와의 관계 단절과 자신들과의 외교 관계 생성을 요구하면서 고려가 이를 들어주자 서로의 계약한 바를 들어주고 물러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2. 서희에 대해서

 

서희는 고려의 문신으로 한국 외교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번 Essay 주제인 거란의 1차 침입에서 서희는 큰 활약을 하였다. 서희는 재상 서필의 아들로, 18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에 전전하였으며, 982년에 북송으로 가서 국교를 회복시키는 일을 성공한 뒤에 이를 본 송태조는 서희의 품격을 감타하여 검교 병부상서3품 벼슬을 주었다고 한다. 서가 유능한 자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첫 번째 일은 1차 여요전쟁에서 알 수 있다. 903년 거란의 소손녕이라는 자가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오자 중군사 자격으로 북방에 참전을 하였다. 이 때 소손녕은 고려군을 격파하기 위해 80만 대군을 데리고 왔다며 항복을 하라고 말을 하였다. 이에 조정은 항복을 하자는 의견을 모으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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