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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정권 2019 팀 a 대본 역사, 철학

원준: 안녕하세요. 저와 세찬이는 Mongolia에 대해서 explain을 해보려고 합니다. 먼저 Mongolia  의 뜻은 영원한 fire이라는 뜻입니다. 푸른 wolf와 흰 deer의 후예들이 Mongolia 사람들이고 winter season만 되면 먹을것이 없어 옆 마을을 약탈(plunder)해야만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Mongolian들은 강한 자에게 붙어서 따르는 것이 숙명이었습니다. Mongolian은 anda라고 하는 것을 맺습니다. anda는 서열 없이 동등한 의형제, 평생의 친구를 뜻합니다. anda를 맺어야하는 이유는 이것을 맺지 않는다면 언제라도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배신을 해도 이상하지 않았던 유목생활(a nomadic life) 이였기 때문에 anda를 맺었습니다. 부족의 leader는 tribe member이 어떠한 일을 겪으면 그에 복수(revenge)를 반드시 해야 했습니다. 이 특성을 잘 활용해 Mongolia의 combine을 견제한 금나라(Jin dynasty)는 각 tribe을 이간질(come between) 시키며 내부 분열(division)을 부추겼습니다. Mongolia가 처음으로 모습을 보인 시기는 8th century 쯤입니다. 12th century 여진족(Jurchen)이 세운 금나라(Jin dynasty)가 성장을 하게 됩니다. 여진족(Jurchen)은 예전부터 거란(Khitan)에게 핍박을 당해왔습니다. 거란(Khitan)족은 여진족(Jurchen)의 마을에 있는 남자들을 모두 죽이는 행위를 해왔고 똑같이 여진족(Jurchen)은 몽골족에게 핍박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 1100년대 몽골 고원의 북동부 지역의 수장인 예수게이(Yesugei)는 칭기즈칸(Genghis Khan)의 father입니다. 예수게이(Yesugei)는 1160년쯤 칭기즈칸(Genghis Khan)이 태어날 때 티타르족(Tatars)과 war을 하였고 그때 사로잡은 족장의 이름을 아들에게 테무친(Temüjin)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칭기즈칸(Genghis Khan)이 13세에 Khongirad 부족의 보르테(Börte)라는 여자와 약혼을 합니다. 약혼(engagement,)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인 예수게이가 티타르족(Tatars)에게 독살(poison)을 당합니다. 그리고 13살에 징키스칸이 족장이 됩니다. 어린나이에 족장이 된 테무진(Temüjin)을 보고 친척들과 부족민들은 하나둘씩 그의 곁을 떠납니다. 칭기즈칸은 childhood부터 엄청나게 힘든 생활을 했고 나중에 그 역경을 이겨냈습니다. 자 칭기즈칸의 정복활동에 대해서는 세찬이가 설명해줄 겁니다. 


세찬: 몽골제국이 강했던 이유


칭기즈 칸과 그의 후손들이 그렇게 많은 영토를 가질 수 있었던 이유에는 ‘말’이다. 유럽 말보다는 작지만 강력하고 튼튼하다. 전투를 하러 가기 전에, 통솔자가 승리를 이끌기 위해서 암말의 젖을 흩뿌려서 다짐한다고 한다. 몽골에서는 전쟁을 승리하면 공을 세운 말에 대한 보상을 먼저 한다고 한다. 몽골제국의 전술에 말을 이용한 학익진이었다. Hit and Run으로 기습공격을 하고 중앙 쪽은 빠른 속도로 후퇴하고, 가장자리는 느린 속도로 후퇴하며 말로 유인을 해 몽골의 유리한 장소로 이끌었다. 칭기스칸 군대의 기병은 한 명당 3~4마리의 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먹을 것이 없어지면 말의 피를 먹어 영양분을 채운다고 한다.  


칭기즈 칸의 사준사구


칭기즈 칸에게는 8명의 건국공신들이 있었다. 8명의 건국공신들 중 4명을 사준( 네 마리의 말)그리고 나머지를 사구(네 마리의 개)라 불리었다. 사준은 내정과 전략에 힘을 같이 쓴 인물을 말하고, 사구는 전투에서 용맹하게 큰 공을 얻었던 인물들을 말한다. 이때의 사준사구와 칭기즈 칸의 얘기만 들어도 벌벌 떨었다고 합니다. 먼저 수부타이, 수부타이는 칭기즈칸의 위대한 장수로서 사람이 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고 생각한다.중앙아시아, 러시아 너무나 많은 나라을 무찌르고 금나라(금나라에게 처음 패배 맛을 느꼈지만, 다시 멸망 직전으로 몰아갔다) 그렇게 그는 32개의 나라를 정복하거나 멸망시켰다 합니다. 사구 중 한명인 제베와 함께 서쪽정벌을 목표로 활동합니다. 


제베는 궁술의 명인이라고 불립니다. 제베라는 이름은 징기즈 칸이 지어준 이름으로 ‘화살’이라는 뜻입니다. 제베는 어릴 때 예수게이를 죽이고, 징기즈 칸의 모든 것을 빼앗갔었다. 그런 타르쿠타이 쿠릴투크의 부하였던 제베는 몽골내부 패권 싸움에서 승리를 잡는 징기즈 칸을 보고 활을 겨녀 그의 목을 맞췄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그는 징기즈 칸의 포로로 잡혔다. 그렇게 용맹함을 알아봤던 징기즈 칸의 부하가 되어 수부타이와 서쪽정벌을 하다가 돌아오는 중에 죽는다.


서윤: 이자겸의 난이 일어났을때 개경의 귀족들은 이자겸을 재대로 막지못하였고 이때문에 인종은 개경의 귀족들이 왕권을 보호해 줄 수 없구나 라고 생각을 해요. 이때 나타난것이 바로 서경 세력인데 이 서경 세력의 대표인 승려 묘청은 인종에게 서경으로 천도를 하자고 주장을 해요. 그러자 인종은 이를 허락을 하고 서경에 궁궐을 짓기 시작한다. 하지만 개경세력은 이를 당연히 반대를 하게되고 이 와중에 인종이 서경 행차를 하게 되는데 갑자기 폭풍이 불고 궁궐을 짓는대 벼락이 처서 파게가 되요. 이를 근거로 서경 천도를 반대로 하고 서경천도른은 힘을 잃고 인종도 포기를 하게 되요. 하지만 묘청과 서경 세력들은 이에 반대하고 반란을 일으키고 이를 개경세력 대표적으로 김부식이 막음으로 써 개경새력의 문신의 권위가 괭장히 많이 올라가요. 그리고 대부분의 무신 세력이 서경세력이였는데 묘청의 난에 참여하게 되면서 무신세력과 서경세력의 권력이 급격하게 내려가게 되요. 그리고 이제 인종이 죽고 의종이 다음 왕위 되는데 왕위에 오르고나서 계속 방만한 생활을 보내요. 연회를 하는데 밤을 세워서 계속될때도 있었는데 이럴때마나 끼니도 못챙기고 경계를 하고 근데 이런 연회를 3일마다 했데요. 시간이 지날수록 무신과 문신의 차별은 심해즤고 결국 정중부, 이의방, 이고등를 중심으로 1170년 8월에 반란을 일으켜 연회의 참여한 모든 문신을 죽이고 권력을 장악을 합니다.


동옥: 무신정권(武臣政權)

무신정권(武臣政權)은 1170~1270까지 100년간 무신들이 정권을 잡았던 사건이다 

처음 무시정권이 일어난 이유는 문신(文官)들과의 차별적인 대우를 참지 못하고 무신(武臣)들이 군사를 몰고 쳐들어가 문신들을 다 죽이고 정권을 잡는 것으로 시작 한다 하지만 정권을 잡은 이후 무신들 사이에서 권력을 잡기위해 서로 죽고 죽이는 혼돈의 시간이 시작된다 처음 이의방과 정주부와 이고는  무신정변을 일으킨 주요 인물들인데 이들은 서로 권력을 얻기 위해 싸움이 벌어진다 이고라는 인물은 쿠데타를 일으키려다 실패로 돌아가 죽게 되고 이의방은 서경지역에서 일어난 반란을 제압 하기위해 떠나는 데 정중부의 아들인 정균에게 살해당한다 이렇게 정씨부자가 정권을 잡게 된다 결국엔 무신정권은 서로 권력을 얻기 위해 죽고 죽이는 혼돈의 시기 이다 하지만 이런 혼돈의 시기에도 최씨가의 4대 집권이 등장하는데 최씨가는 60년 동안 고려를 잡고 있다 그인 물들은 최충헌 최우 최항 최의라는 4명의 인물들이 있다. 최충헌은 이의민을 제거 하고 최고 권력 자리에 오른다 그런다음 국가의 일을 전체적으로 관리 하는 교정도감(敎定都監)을 세우고 교정도감(敎定都監)의 우두머리인 교정별감(敎定別監) 자리에 자신이 올라간다 또한 도방이라는 사병집을 자신의 경호부대로 만들어 군사적 권력 또한 강화한다. 이렇게 최충헌이 죽고 그의 아들인 최우도 똑같이 권력을 손에 넣게 된다 여기서 최우는 삼별초(三別抄)라는 그 당시 특수부대를 만들어 군사적 권력을 더욱 강화 시킨다 하지만 최우가 권력을 잡고 있던 시기에 몽골군의 쳐들어오게 되고  몽골군에 맞서 40년 동안 싸운다 이때 몽골군 을 피해 강화도로 피신하게 되고 계속 싸우게 되는 시간이 흐르고 계속 되는 전쟁 속에 최씨가의 마지막 권력자인 최의는 무신정권의 내부적 갈등으로 부하들에게 살해당한다


종윤: 최씨 정권이 종말을 맞이하고 김준(고려시대의 무신)은 원종을 도와 고려 왕실 복원에 힘을 쏟았다. 한편 임연(고려 원종 때의 신하)은 최의를 죽이고 권력을 손에 넣게 될 줄 알았는데, 김준이 자신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으니 그의 아들 임유무(고려시대의 무신)와 함께 김준을 암살하고 김준의 빈자리를 꿰어 원종을 폐위시킨 뒤 권세(권력과 세력)를 부리기 시작했다. 원종은 자신을 도와주던 신하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다시 그 힘을 잃고 몽골로 피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고려 조정에서 원종을 내보내고 다시 강화도에서 항전(적에 대항하여 싸움)하는 쪽으로 태도를 바꾸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몽골에서 심하게 임연을 압박해왔다. 몽골 사신의 협박에 결국 임연은 원종을 복귀시키고 개경으로의 환도를 찬성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꾸었다. 모든 기회를 놓치고 빈털터리가 된 임연은 억울한 마음에 화병을 얻어 오랫동안 앓다가 세상을 떠나게 된다. 몽골 군사를 이끌고 다시 돌아온 원종은 임연이 죽자 다시 개경 환도를 추진하려 했으나 이번에는 임유무가 반대를 하였다. 결국 원종과 조정(왕실) 대신들은 고심 끝에 임유무에게 현상금을 걸어 밀지(임금이 비밀리에 내린 명령)를 그의 진영에 보내었는데, 뜻을 모른 몇몇의 무관(벼슬이 없다)들은 임유무의 목을 베어 입궁하였다. 임유무를 마지막으로 백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고려를 좌지우지했던 무신 정권은 막을 내리게 되고, 원종은 강화도를 나와 개경(경기도 서북부에 있는 시)으로 환도하는데 성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