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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예술 그리고 교육의 상관성 학교 및 사회교육개혁

2020. 12. 21(화) 동양일보 풍향계 논설문

문화와 예술 그리고 교육의 상관성

한희송(에른스트 국제학교 교장)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Wien)은 다뉴브강 지류인 ‘빈 강’ 물 표면의 반짝거림과 ‘흰’색을 대응해서 만든 이름이다. 고대 유럽 땅의 주인이었던 켈트(Celt)족 언어에서 “빈도(vindo-)”는 “희다’라는 뜻이었다. 그 후 게르만족(Germanic)이 살면서 이 강과 그에 붙은 지역을 “빈”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게르만족이 융성하고 그 중심에 합스부르크(Habsburg)가문이 자리를 틀자 그들의 본거지인 오스트리아는 ‘빈’과 ‘빈 강’을 끼고 있다는 이유로 세계의 중심이 됐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써 막시밀리안 1세는 잘생긴 것으로 유명한 자신의 아들 펠리페(Felipe I)를 당시 최강국이라 할 수 있는 스페인 뜨라스따마라(Trastamara)가문의 후아나(Joana)와 혼인하게 함으로써 스페인-합스브르크가문을 이루어 냈다.


그러나 역사는 늘 정치적 권력을 바꾸면서 흐른다. 중세의 봉건제도는 인간의 삶을 위한 최대의 상품은 곡식이며 이는 땅으로부터 나온다는 생각에 휩싸여 있었다. 따라서 곡식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토지만이 자본(資本)이며 토지를 매개체로 해 인간사회의 시스템은 만들어져야 했다. 중세는 토지가 유일한 자본으로서 역할을 하는 동안 다른 형태의 자본이 생성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볼 수 없었다. ‘근대’라는 시기가 인간의 생각에 자유를 주어 ‘기계’라는 쇳덩이를 자본으로 만들 수 있게 되자 ‘자유’는 인간 누구나 천부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것임을 사람들은 어렵게 또는 쉽게 인식했다.


프랑스 대혁명이란 사건과 그 정신의 전파방법을 통해 역사에서 유명해진 나폴레옹(Napoleon)은 별안간 그 유명세를 이용해 오히려 세상을 지배할 욕심을 키워낸다. 유럽 전체는, 특히 프랑스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던 독일은 그 와중에서 시대적 풍파를 겪어야만 했다. 프로이센(Preußen)은 독일지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왕국으로써 라인동맹(Rheinbund)에 참여한 지역들처럼 나폴레옹의 보호를 원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그 결과는 전쟁이었고 이를 이유로 맺은 틸지트(Tilsit)조약은 프로이센이 굴욕을 경험하길 종용했다.


베토벤(Beethoven)의 귀는 점점 소리에서 멀어져 가고 있었다.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던 해인 1804년 그는 지금의 빈 대학교를 마주하고 있는 ‘파스콸라티 하우스(Pasqualati House)’로 거처를 옮겼다. 그리고 나폴레옹이 ‘100일 천하’를 거치며 워털루(Waterloo)전투에서 웰링턴(Wellington)에게 참패해 세인트 헬레나(St Helena)섬에 유배되던 1815년까지 신성로마제국의 유일한 여황제인 마리아 테레자 (Maria Theresa)의 외과의사였던 파스콸라티의 집에 머물렀다. 이 기간 동안 그는 4,5,7,8번 교향곡을 썼고 ‘월광’소나타도 이곳에서 작곡했다.


베토벤은 1808년 자신의 후원자인 “로브코비츠 공작Prince Franz Joseph von Lobkowitz”과 “라주모프스키 백작(Count Razumovsky)”에게 몇 년여에 걸쳐 작곡한 교향곡을 바쳤다. 서양음악에서 고전주의를 완성한 베토벤은 곧 시작될 낭만주의의 서곡을 운명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로 많은 사람들에 의해 묘사된 작품번호 67번 교향곡 제 5번으로 세상에 알렸다. 1악장은 일반적인 소나타 형식의 ‘활기찬 빠르기(Allegro con brio)로 시작하면서 마단조의 2/4박자에 그 유명한 “따따따 ~ 따” 로 운명이 찾아 왔음을 고했다.


1808년 빈 극장(Theater an der Wien)에서 베에토벤은 5번, 6번 교향곡을 포함한 여러 개의 프로그램을 세상에 보였다. 그 후로 ‘운명 모티브(Schicksals-Motiv)를 실은 제5교향곡의 이 첫 마디들은 프랑스에 대한 독일에서뿐 아니라 1,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을 이긴 프랑스를 포함한 연합국에서조차 ‘승리’의 아이콘이 됐다. 예술과 교육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것들이 인류문명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구석기 시대에서조차 돌을 깎고 다듬는 일이 그 열악한 조건을 이겨내고 다른 곳으로 전파됐다. 예술과 교육은 인류역사를 통해 내 것과 네 것의 경계를 무시한다. 그 중립성만이 인격의 바탕이 되는 예술이고 교육이다. 우리의 교육이 어떤 방향을 가지고 있나 생각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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