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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학년제와 통합교과 성공의 근본요건 학교 및 사회교육개혁

2021. 12. 13(월) 동양일보 풍향계 논설문

무학년제와 통합교과 성공의 근본요건

한희송(에른스트 국제학교 교장)


도시계획과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는 수식어의 대표적 대상이다. 건물과 거리는 당장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도시가 장소를 택하는 순간 그것은 사람이 살 땅 위에 설치된 조각품이며 그림이다. 거기에 시간이 스며들면 이들은 사람의 삶과 얽혀 누군가의 고향이 되고 누군가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그 사이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의 존재의 증인이 된다. 백년 안에 이 모든 것을 바꾼다면 그것은 도시계획이 아니고 문명의 파괴이다.


교육도 마찬가지이다. 잘못되면 바꾸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교육의 본질과 그것이 사람의 인식과 가진 상관성을 생각하는 요소들의 집합에 포함되기 힘들 것이다. 아무리 바꾸고 싶어도 100년이 지나야 한다는 말은 사실 도시계획이나 교육을 혁명적 변화를 기반으로 설정한 시간으로 셈한 것이다.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긴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정부주도하의 천편일률적 시험으로부터 벗어나 창의성을 바탕으로 학생들의 대학입학을 결정하자는 시도가 수시입학제도로 구현되었다. 그 제도가 가진 단점을 보완시켜 발전하는 대신 일률적인 정시제도로 다시 회귀하려는 시도들이 다시 굳센 의지를 다지는 것을 보면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을 적어도 200년지 대계로 고쳐야 할 것이다.


무학년제도(無學年制度)에 대한 이론적 주장이 나타난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무학년제를 실험이 아닌 구체적 교육개혁의 대안으로 삼은 것으로 이야기하자면 이미 학년제보다 앞 선 중세와 근대에 이루어진 일이다. 우리 역사에서 조선시대의 서당이 학년을 나눈 적이 있던가? 이미 많은 나라에서 유치원생에 해당하는 아이에서부터 대학에 해당하는 학생들을 구분 없이 가르친 것이 수십 년 전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성공적으로 시도된 경우도 적지 않다. 그리고 결국 공교육에서도 이를 수용하여 초,중등학생들의 교과서에서 학년과 학기의 표기가 없어지고 있다.


현실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무학년제가 이야기거리로 등장하면 기성세대는 먼저 이해할 수 없음을 드러내고 그 다음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일축해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미 공교육에서 시도되고 있다고 하면 그것이 잘못된 정책이라는 의견을 쉽게 표현한다. 무학년제를 경험한 적도 없고 그 과정이나 결과를 본 적도 없고 아예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는데 그것이 매우 위험한 시도라는 의견에서 물러날 생각은 없어 보인다.


왜 그럴까? 그것이 바로 교육이 사람들에게 부여한 생각이란 객체이다. 다만 사람들이 자신이 자유롭게, 그리고 스스로 생각한 의견이 그런 것이라고 착각할 뿐이다. 교육이 중요한 이유는 사람의 생각을 심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이 가진 생각의 범주 안에서 살아야만 한다. 사람의 삶은 어떠한 것이든지 그가 가진 추상적 생각의 방향과 크기로 정해지는 구상적 사건에 불과하다. 공부를 열심히 하기 위해 마음대로 노는 자유의 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의견이 당연한 것으로 거론되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러나 그것은 자유의 개념을 물리적으로 해석한 사람들의 의견일 뿐이다. 자유를 얻기 위한 과정이 공부일 수는 있어도 자유를 희생하는 것이 공부일 수는 없다. 그러한 것은 물질적 세상에 편입되기 위해 익히는 기술일 수는 있어도 공부의 개념 안에 존재하지는 않는다.


통합교과에 관한 의견은 이상하게도 반대의 성향을 보인다. 통합교과로의 방향이 좋다는 의견이 우수한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도 수사적(修辭的) 표현으로 정의하는 정도를 넘어 근접한 경험을 기준으로 이야기하면 금새 혼란에 빠질 만큼 소재의 부재가 드러난다. 그럼에도 통합교육을 사람들은 지지한다. 결국 무학년제나 통합교육제도는 그 본질보다 그 단어가 주는 정서적 느낌으로 사람들의 지지나 반대를 확보하는 처지에 머물러 있다.


사람의 의식을 바꾸는 일은 도시를 바꾸는 일보다 힘들다. 로마의 신들을 섬기기 위해 지은 전당들이 로마를 장식하고 있을 때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기독교로 국교를 바꾸면서 이들을 허물고 기독교교회를 짓는다는 생각은 현실화할 수 없는 것임을 알았다. 비잔티움(Byzantium)이란 곳에 새로운 도시를 짓고 교회를 지어야 한다는 혁명적 발상을 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콘스탄티노플이라는 도시가 생겼다. 이슬람 세력이 이를 정복하여 이스탄불이란 이름으로 대체한 것이 이미 오백 년도 더 된 일이다. 그럼에도 아직 콘스탄티노플의 풍취를 없앨 수는 없다. 교육의 개념에 대해 국민적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교육의 본질에 대해 사람들이 스스로 가진 생각의 경계를 넘을 수 있는 의지를 교감할 수 있게 하는 일이다. 교육이 정치의 하수(下手)를 벗어나 교육 자체의 순수성이 발현될 방향을 논해야 할 시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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